2026.09.11 (금)

  • 흐림동두천 24.2℃
  • 구름많음강릉 24.0℃
  • 구름많음서울 24.9℃
  • 구름많음대전 24.8℃
  • 구름많음대구 27.8℃
  • 맑음울산 24.5℃
  • 구름많음광주 27.7℃
  • 맑음부산 26.4℃
  • 구름많음고창 25.6℃
  • 맑음제주 27.3℃
  • 흐림강화 23.2℃
  • 구름많음보은 23.9℃
  • 흐림금산 25.5℃
  • 구름많음강진군 28.5℃
  • 구름많음경주시 25.1℃
  • 맑음거제 26.1℃
기상청 제공

경제일반

레버리지 손실은 정말 투자자만의 책임인가? [ 부르디외와 벡으로 본 레버리지 투자 ]

--위험의 이익은 나누면서, 개인이 손실을 모두 부담하다니
- 위험 생산자 모두 책임져야

낭떠러지 앞에 ‘급커브 주의’ 팻말이 하나 세워져 있습니다. 그런데 도로의 굴곡은 지나치게 심하고 경사는 가파릅니다. 차량이 튕겨 나갈 때 막아줄 안전난간은 종잇장처럼 얇습니다.

그곳에서 차량 사고가 났다면 책임은 운전자에게만 있을까요. 운전자가 과속했거나 경고를 무시했다면 운전자의 책임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안전운전 안내문을 읽게 했다고 해서 도로 관리자의 책임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팻말의 존재와 상관없이, 부실한 도로 설계와 안전시설에 대한 관리자의 책임은 여전히 남습니다.

이 상황은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투자자가 매수 버튼을 눌렀다는 사실은 개인의 투자 판단과 손실 책임을 증명할 뿐입니다. 그것이 고위험 상품을 시장에 허용하고 설계하며 유통한 정책 당국과 판매사의 제도적 책임까지 배제하지는 못합니다. 따라서 “투자자 네가 매수 버튼을 눌렀으니 네 책임”이라는 말은 절반만 진실입니다.

“네가 샀으니 네 책임”이라는 명제를 무기 삼아 “그러니 다른 누구의 책임도 없다”는 결론으로 직행하는 것은 논리적 귀결이 아닙니다. 위험을 허용하고 설계한 주체의 책임을 지운 채, 손실의 비용을 마지막에 버튼을 누른 개인에게 몰아넣으려는 권력의 편의적 화법입니다.

개인의 선택 책임과 제도의 설계 책임은 대립항이 아닙니다. 서로 다른 층위에서 동시에 물어야 할 병존의 책임입니다. 이 간극을 정확히 짚어내는 이론이 바로 피에르 부르디외와 울리히 벡의 사회학적 통찰입니다.


◆부르디외: ‘내 책임’이 ‘오직 내 책임’으로 바뀌는 과정

부르디외의 핵심은 투자자 책임을 부정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개인의 책임이라는 사실이 어떻게 ‘오직 개인의 책임’이라는 상식으로 굳어지고, 그 과정에서 제도적 조건과 책임이 시야에서 사라지는지를 설명하는 데 있습니다.

투자자가 매수 버튼을 눌렀고 그 판단에 책임이 있다는 말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사실이 손실을 설명하는 유일한 언어가 되면 문제가 생깁니다. 상품을 누가 허용했는지, 어떤 투자자에게 접근을 열어뒀는지, 어떤 진입요건과 보호장치를 적용했는지, 위험고지와 판매 규칙은 충분했는지 같은 질문은 사라지고 최종 매수자의 선택만 남습니다.

따라서 부르디외식 분석의 핵심은 ‘내 책임’이 어떻게 ‘오직 내 책임’으로 바뀌는가입니다.


①상징권력: 책임의 틀을 정하는 힘

상징권력은 무엇을 정상적이고 정당한 것으로 볼지, 누구를 책임 있는 주체로 분류할지를 정하는 힘입니다. 단순한 홍보 문구가 아니라 사람들이 현실을 어떤 범주로 이해할지를 구성하는 권력입니다.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의 허용도 서로 다르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 “고위험 금융상품의 시장 진입을 허용했습니다.”

  • “투자자의 선택권을 확대하고 규제 비대칭을 해소했습니다.”

두 번째 표현이 거짓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실제로 투자 선택지는 늘어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선택권 확대’라는 표현이 정책 전체를 대표하는 설명으로 굳어질 때입니다.

그 순간 국가는 위험을 허용한 제도 설계자가 아니라 선택지를 제공한 중립적 관리자로 자리 잡습니다. 투자자는 위험을 알고 자유롭게 선택한 개인으로 분류되고, 손실은 자연스럽게 개인의 판단 실패로 이해됩니다.

반면 누가 상품을 인가하고 거래 자격과 위험 통제 장치를 설계했는지는 배경으로 밀려납니다.

상징권력은 반드시 거짓을 만들어야 작동하는 것이 아닙니다. 현실의 일부를 전면에 놓고 다른 일부를 주변으로 밀어냄으로써 책임의 지도를 다시 그릴 수 있습니다.


②오인: ‘내게도 책임’이 ‘오직 내 책임’이 되는 순간

오인은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질서와 책임 배분을 자연스럽고 당연한 질서처럼 받아들이는 과정입니다. 단순한 무지나 사실관계의 착오와는 다릅니다.

따라서 투자자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오인이 아닙니다.

“내가 위험한 상품을 샀으니 내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이는 합리적인 자기책임의 인정입니다. 투자자는 자신의 투자 목적과 손실 감내 능력, 상품 이해 수준, 매수·보유·매도 판단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오인은 그 다음 단계에서 시작됩니다.

“내가 샀으니 모든 손실은 오직 내 책임입니다.

상품을 어떤 조건으로 허용했고 보호장치가 충분했는지는 더 이상 물을 필요가 없다.”

이 순간 ‘나에게도 책임이 있다’가 ‘오직 나에게만 책임이 있다’로 바뀝니다.

상품의 인가와 설계, 진입 규제와 판매 규칙처럼 투자자의 선택을 둘러싼 제도적 조건은 책임의 시야에서 사라집니다.

부르디외식으로 보면 오인은 개인이 자신의 책임을 모르는 상태가 아닙니다. 개인의 책임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 사실을 다른 책임까지 지우는 자연스러운 질서로 받아들이는 상태입니다.


③상징폭력: 개인책임이라는 분류가 제도적 책임을 지우는 권력으로 작동할 때

오인이 지배적인 책임 배분을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는 메커니즘이라면, 상징폭력은 바로 그 오인을 통해 특정한 책임 배분이 정당한 질서로 관철되는 지배의 방식입니다.

부르디외의 상징폭력은 지배적인 위치에 있는 집단과 제도가 자신들의 분류와 판단 기준을 사회적으로 정당한 기준으로 만들고, 그 기준을 통해 기존의 권력관계를 자연스러운 질서로 유지하는 힘입니다. 핵심은 개인이 단순히 잘못 생각한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누구의 분류가 사회의 정당한 분류로 인정되고, 그 결과 어떤 책임은 전면에 남고 어떤 책임은 보이지 않게 되는가에 있습니다.

단일종목 레버리지 손실에서 이를 적용하면, “투자자가 매수 버튼을 눌렀으니 손실은 투자자 책임”이라는 말 자체는 사실의 일부입니다. 그러나 이 분류가 손실을 설명하는 지배적인 기준으로 굳어지면 책임의 구조가 달라집니다.

투자자의 매수 책임은 전면에 남는 반면, 누가 상품을 인가했는지, 누가 레버리지 구조를 설계했는지, 어떤 진입규제와 판매규칙을 적용했는지, 위험 통제 장치는 적절했는지라는 제도적 책임은 주변으로 밀려납니다.

따라서 이 사례에서 상징폭력의 핵심은 투자자에게 책임을 묻는 것 자체가 아닙니다. 개인책임이라는 하나의 정당한 원칙이 책임 전체를 규정하는 지배적인 분류가 되어, 다른 위험생산 주체들의 책임을 보이지 않게 만드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손실을 입은 투자자까지 이 분류를 받아들여

“내가 눌렀으니 모든 책임은 내게 있고, 제도의 책임을 묻는 것은 변명입니다.”

라고 생각한다면, 그 지배적인 책임 배분은 별도의 강제 없이도 유지됩니다.

오인은 ‘오직 개인책임’이라는 질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하는 인식의 메커니즘이고, 상징폭력은 그 오인을 통해 개인책임 중심의 분류가 제도적 책임을 가리고 기존의 책임질서를 정당화하는 권력의 작동입니다.


④ ‘내 책임’이 ‘오직 내 책임’으로 바뀌는 세 단계

결국 ‘내 책임’이 ‘오직 내 책임’으로 둔갑하는 과정은 상징권력, 오인, 상징폭력의 3단계로 완성됩니다.

-상징권력(프레임의 구성): “개인이 자유롭게 선택했다”는 사실만 전면에 세우고, 상품 인가와 보호장치 설계라는 제도의 역할은 배경으로 밀어냅니다.

-오인(질서의 자연화): “내게도 책임이 있다”는 인정을 넘어 “내가 샀으니 다른 주체를 탓할 수 없다”며 불평등한 책임 배분을 당연한 상식으로 받아들입니다.

-상징폭력(책임 질서의 관철): 손실의 원인을 개인의 탐욕과 무지로만 규정합니다. 투자자 스스로 이를 내면화하면서 제도의 설계·감독 책임은 논의에서 완전히 증발합니다.

부르디외식 비판의 핵심은 개인의 투자 책임을 부정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개인의 선택 책임이라는 부분적 사실이 상징권력으로 증폭되고, 오인과 상징폭력을 거쳐 제도의 책임을 완전히 지워버리는 왜곡의 구조를 짚어내는 데 있습니다.

문제는 ‘내 책임’이 아니라 ‘오직 내 책임’으로 몰아가는 권력의 화법입니다. 매수 버튼을 누른 행위가 개인의 책임을 증명할 수는 있어도, 상품을 인가·설계·유통·감독한 제도적 주체들의 책임까지 면제하는 방패가 될 수는 없습니다.


◆ 벡: 위험을 함께 만들었다면 책임도 함께 물어야

부르디외가 지적한 상징폭력이 “왜 투자자 스스로 모든 것을 내 탓으로 돌리게 되는가”를 설명한다면, 위험을 함께 만든 제도적 주체들이 어떻게 법망과 비판을 유유히 빠져나가는지는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의 ‘조직된 무책임(Organized Irresponsibility)’으로 설명할 때 비로소 그 실체가 드러납니다.

벡은 현대사회의 위험을 지진이나 태풍 같은 자연재해와 엄격히 구별했습니다. 원자력 발전소의 사고, 화학물질 유출, 그리고 현대 금융시스템의 위기와 같은 위험은 외부에서 느닷없이 들이닥친 천재지변이 아닙니다. 더 많은 부와 수익, 제도적 편익을 얻기 위해 사회의 핵심 주체들이 치밀하게 내린 정책적·경제적 의사결정의 직접적인 부산물입니다. 현대사회는 부를 생산하는 바로 그 계산된 결정들을 통해 새로운 위험을 공장처럼 찍어내고 있습니다.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 역시 시장에 저절로 솟아난 위험이 아닙니다. 제도적 주체들이 각자의 효용과 편익을 계산하며 내린 결정들이 촘촘히 얽혀 만들어진 합작품입니다.

정책당국은 자본시장 활성화와 금융 혁신, 해외 시장으로 빠져나가는 유동성을 국내에 묶어둔다는 정책적 성과와 편익을 위해 위험 상품의 빗장을 열었습니다. 거래소는 거래대금 확대와 수수료 수입이라는 확실한 이익을 노려 상장과 매매의 통로를 닦았습니다. 자산운용사와 증권사는 고율의 운용보수와 폭발적인 위탁매매 수수료라는 상업적 이익을 챙기기 위해, 변동성에 따른 복리 잠식 위험을 품은 구조를 설계하고 공격적인 마케팅과 유통에 나섰습니다.

이처럼 각 주체가 저마다의 편익을 노리고 위험의 생산·유통 사슬을 촘촘히 완성한 끝에, 맨 마지막 단계에 이르러서야 투자자가 자기 돈을 걸고 매수 버튼을 누른 것입니다.

하지만 위험이 현실화되어 계좌가 녹아내릴 때, 이 사슬에 얽힌 주체들은 일제히 자신의 좁은 업무 매뉴얼 뒤로 숨어버립니다.

정책당국은 “시장의 자율성을 보장했고 위험 고지 규정도 마련해 두었다”고 말합니다. 운용사는 “상품은 투자설명서에 기재된 일일 수익률 추종 방식대로 정확하게 움직였다”고 항변합니다. 거래소는 “정해진 상장 요건에 따라 거래 환경을 제공했을 뿐”이라며 선을 긋고, 판매사는 “필수 교육과 적합성 절차를 누락 없이 거쳤다”며 발을 뺍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법과 제도는 묻습니다. “결국 손가락을 움직여 매수 버튼을 누른 것은 당신 아닙니까?”

이 모든 주체들의 항변은 법률적으로, 절차적으로는 완벽한 사실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서 벡이 경고한 현대 사회의 거대한 모순이 드러납니다. 위험을 생산하고 유통하며 각자의 편익을 챙긴 주체는 여럿인데, 피해가 발생하자 각자가 자신에게 주어진 좁은 절차적 의무만 내세우면서, 정작 치명적인 위험 구조 전체를 시장에 풀어놓은 ‘총체적 책임’은 공중으로 증발해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벡이 고발한 ‘조직된 무책임’의 민낯입니다. 이는 특정 공무원이나 금융사 임직원의 개인적 악의나 나태를 뜻하지 않습니다. 고도화된 제도적 분업과 전문화, 법적 책임의 파편화 속에서, 모두가 합법적으로 자기 절차만 수행했는데도 결과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파국이 개인에게만 고스란히 전가되는 잔인한 제도적 역설입니다.

따라서 벡의 통찰은 결코 투자자의 자기 책임을 면제해주자는 감상적인 주장이 아닙니다. 투자자는 자신의 손실 감내 한도를 제대로 따지지 않고 매수 버튼을 누른 행위에 대해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합니다.

하지만 “마지막에 산 것은 투자자 개인”이라는 사실이, 앞단에서 각자의 편익을 위해 위험한 낭떠러지 도로를 설계하고 허용하며 질주를 부추긴 주체들의 제도적 책임까지 지워버리는 면죄부가 될 수는 없습니다. 위험을 만드는 데 국가와 거대 금융기관이 제도적으로 공모했다면, 그 위험이 현실화되었을 때의 책임 역시 각자가 누린 편익과 행사한 권한의 크기에 비례해 함께 물어야 합니다. 위험 생산자의 구조적 책임을 마지막 소비자의 손가락 하나로 손쉽게 대체해버리는 사회는, 또 다른 형태의 낭떠러지 상품을 시장에 끊임없이 양산할 뿐입니다.


◆경고했다고 제도책임까지 끝나는 것은 아니다

① 문제는 ‘경고했으니 끝’이라는 논리

단일종목 레버리지 논쟁에서 가장 흔한 반론은 이것입니다.

“위험을 충분히 고지하고 교육까지 했는데, 왜 당국과 판매사의 책임을 묻습니까.”

이 주장에는 타당한 부분이 있습니다. 위험고지와 교육이 충실했다면 투자자의 주의의무는 더 무거워집니다. 상품의 기본 구조를 확인하지 않은 채 높은 수익만 기대하고 투자했다면 그 판단에 대한 책임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위험을 경고했다는 사실과 위험에 맞는 제도를 설계했다는 사실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② 경고의무와 안전설계 책임은 다르다

산업용 기계를 보면 이 차이가 분명합니다.

위험한 절단기에 “손을 넣지 마시오”라는 경고문을 붙이고 작업자에게 안전교육을 실시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작업자가 이를 무시하고 위험하게 사용했다면 작업자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절단부에 안전덮개나 작동 차단장치가 없다면 제조사와 관리자가 “우리는 경고했습니다”라는 이유만으로 안전설계 책임까지 면제받을 수는 없습니다.

경고는 사용자의 책임을 강화하지만, 위험을 통제할 수 있었던 주체의 설계책임까지 대신하지는 못합니다.


③ 금융상품도 같은 원리가 적용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당국과 판매사가 위험을 고지하고 교육을 실시했다는 사실은 인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투자자가 상품의 손실 구조를 실질적으로 이해했고, 그 위험을 감당할 수 있었다는 결론까지 나오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별도로 물어야 합니다.

고위험 상품의 위험 수준에 맞는 진입요건과 투자자 보호장치를 충분히 마련했는가입니다.

위험고지는 투자자의 책임을 강화하는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책당국·거래소·운용사·판매사의 책임을 없애는 면책증명서는 아닙니다.


④ 벡: 절차를 지켰다는 말이 책임의 공백을 만들 수 있다

벡의 ‘조직된 무책임’은 바로 이 지점에서 의미를 갖습니다.

당국은 “규정을 마련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운용사는 “상품은 설계대로 움직였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판매사는 “위험을 고지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투자자는 “마지막 매수는 내가 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각각의 말은 부분적으로 사실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각자가 자기 절차와 제한된 역할만을 내세우면, 상품의 허용·설계·상장·유통·감독을 거쳐 만들어진 위험 전체의 책임은 여러 주체 사이로 분절됩니다.

이것이 벡이 말한 조직된 무책임의 핵심입니다. 각 주체에게 부분적 책임은 존재하지만, 모두가 자기 역할만을 근거로 책임을 제한하면 전체 위험에 대한 책임은 흐려질 수 있습니다.


⑤ 경고는 책임을 나누는 기준이지 면책의 근거가 아니다

“네가 눌렀으니 네 책임”이라는 말은 투자자의 행위책임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므로 다른 주체에게는 책임이 없다”는 결론까지 정당화하지는 못합니다.

투자자는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집니다. 제도와 금융회사는 자신이 허용·설계·유통·감독한 위험에 책임을 집니다.

경고했다고 책임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핵심은 각 주체가 자신이 만들고 통제한 위험에 상응하는 책임을 부담하고 있는가입니다.


◆ 결론:이익에 참여했다면 위험의 비용에서도 빠져나가서는 안된다

단일종목 레버리지 논쟁의 결론은 투자자의 책임을 없애자는 데 있지 않습니다. 위험을 만들고 유통하면서 이익에 참여한 주체들이, 위험이 현실화됐을 때 모든 비용을 마지막 투자자에게만 남겨서는 안 된다는 데 있습니다.

투자자는 자신의 판단으로 매수했으므로 그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러나 정책당국은 상품을 시장에 허용했고, 운용사와 거래소·판매사는 상품의 설계와 상장·유통에 참여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수수료와 운용보수, 거래 확대 등 경제적 편익을 얻은 이해관계자도 존재합니다.

그렇다면 위험이 현실화됐을 때 책임 역시 투자자의 손가락 하나에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위험의 이익에는 여러 주체가 참여하면서 위험의 비용만 최종 투자자가 독점적으로 부담하는 구조는 정당화하기 어렵습니다. 벡의 관점에서 위험을 공동으로 생산했다면 그 위험에 대한 책임 역시 각자가 행사한 권한과 관여한 정도에 따라 나뉘어야 합니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무조건적인 투자손실 보전이 아닙니다. 투자자의 투자손실을 국가나 금융회사가 대신 갚아주자는 주장도 아닙니다. 고위험 상품으로 경제적 편익을 얻은 금융 이해관계자들은 그 편익의 일부를 투자자 보호와 금융교육, 피해예방을 위한 사회적 비용으로 환원하고, 정책당국은 자신이 허용하고 감독한 제도의 적정성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부의 책임도 단순한 사과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상품 허용 기준과 진입장벽, 투자자 보호장치가 위험 수준에 적합했는지를 점검하고, 부족했다면 제도를 고쳐 같은 위험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이 규제권한을 가진 주체가 부담해야 할 정책적 책임입니다.

결국 책임의 원칙은 단순합니다.

투자자는 자신의 선택에 책임지고, 위험을 허용·설계·유통하며 그 과정에서 편익을 얻은 주체들은 자신이 만들어낸 위험과 그 사회적 비용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합니다.

“네가 눌렀으니 네 책임”이라는 말이 틀린 이유는 투자자에게 책임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위험의 이익은 여러 주체가 나눠 가지면서, 위험의 비용만 마지막에 버튼을 누른 개인에게 몰아주는 순간 책임의 균형이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상장회사를 움직인 자, 위험의 마지막까지 남아라 [ 세종메디칼이 드러낸 결정권과 위험부담의 분리 ] 기업은 위험을 감수하고 투자합니다. 투자가 성공하면 회사와 주주가 이익을 얻고, 실패하면 그 손실도 함께 부담합니다. 이것이 정상적인 투자와 자본주의의 기본 원리입니다. 그러나 세종메디칼에서는 그 상식이 뒤집혔습니다. 회사를 움직인 세력이 장기 위험은 법인에 남긴 채, 호재가 시장에 반영되는 순간 보유 지분을 처분해 먼저 빠져나가고 최종 손실만 일반주주에게 떠넘겼습니다. 세종메디칼은 제넨셀 구주 약 63억 원과 전환사채 약 50억 원, 합계 약 113억 원을 인수했습니다. 이 투자는 세종메디칼 법인의 자금으로 이뤄졌고, 장기적인 사업 위험도 회사 안에 고스란히 남았습니다. 그러나 경영권 인수에 참여했던 주요 투자조합들은 제넨셀 임상시험계획 승인이라는 호재가 알려진 직후 이틀에 걸쳐 세종메디칼 지분을 집중 매도했습니다. 지배세력의 대량 매도는 주가 급락으로 이어졌습니다. 이후 제넨셀 임상은 중단됐고, 세종메디칼이 취득한 제넨셀 지분은 전액 손상 처리돼 투자자산의 장부가액은 '0원'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챙겨 떠난 뒤, 투자 실패와 자산 훼손, 거래정지와 상장폐지라는 치명적 비용은 법인과 잔류 주주에게 온전히 집중됐습니다. 이는 '이익의 사유화와 비용의 사회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