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영화<피아니스트 > 전반에 반복적으로 흐르는 상징적인 곡인 슈베르트의 《피아노 삼중주 2번 E플랫장조, D.929》 2악장 Andante con moto는 그저 슬픔을 돋우는 배경음악이 아닙니다.
(관련기사 : 하네케감독의 영화 < 피아니스트 > 리뷰 : 규율, 복제, 그리고 폭력 [ 푸코의 주체화와 미시파시즘 ] https://www.ondolnews.com/news/article.html?no=1637 )
미카엘 하네케 감독은 이 곡의 구조를 빌려 영화의 핵심 주제인 규율의 반복과 자기복제를 청각적으로 형상화합니다.
음악은 도입부부터 장송행진곡을 연상시키는 무겁고 규칙적인 피아노 반주로 시작됩니다. 반주가 끊임없이 같은 걸음걸이를 반복하는 위로, 바이올린과 첼로가 애절한 선율을 노래하며 비상하려 합니다.
그러나 선율은 끝내 완전한 해방에 도달하지 못한 채, 반복되는 처음의 리듬으로 다시 끌려 내려옵니다. 자유를 꿈꾸는 인간의 의지와, 그를 다시 규율의 감옥으로 끌어당기는 보이지 않는 힘이 동시에 연주되는 셈입니다.
이 반복 구조는 에리카의 궤적, 나아가 주체화의 비극과 겹칩니다.
에리카 역시 규율 밖으로 나가려는 욕망을 품고 발터에게 다가가지만, 결국 다시 자기처벌이라는 통제의 문법으로 되돌아옵니다. 영화 초반의 면도칼 자해와 마지막 자해는 모두 동일한 규율 문법의 반복입니다. 나아가는 듯 보였지만 결국 원점으로 돌아오는 이 영화의 서사는, 슈베르트 2악장이 지닌 순환의 리듬과 닮아 있습니다.
물론 19세기의 낭만주의 작곡가 슈베르트가 전체주의나 규율 권력을 의도하고 이 곡을 썼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네케는 끝없이 처음으로 되돌아오는 이 음악의 형식적 특성을 에리카의 삶 위에 정교하게 덧씌웁니다.
음악은 단순히 인물의 감정을 대변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인간을 옭아매는 규율이 어떻게 스스로를 복제하며 순환하는지, 그리고 규율에서 벗어나는 자유의 가능성을 스스로 처벌하고 다시 어떻게 원래의 규율로 돌아가는지를 들려주는 또 하나의 철학적 서사가 됩니다.
영화의 마지막, 에리카가 죽지 않고 피를 흘리며 걸어 나가는 결말은 이 서사를 고독하고 무섭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완전한 해방도, 명확한 파국도 없이 다시 억압적인 리듬으로 돌아가는 삶. 《피아니스트》를 감싸는 슈베르트의 삼중주는 단순한 비애가 아니라, 해방의 가능성조차 허락하지 않는 규율의 굴레와 영원한 반복의 리듬을 들려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