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터 그래함이 지난 일요일 저녁 그의 아들인 그래함의 집에서 사망하였다. 17세의 나이에 가르치는 일을 시작하여 55세까지 교사직에 종사하였다. 아브라함 링컨과 예이츠 주지사가 그의 학생이었다. 기자처럼 처음 그를 알게 된 사람들은 시간의 무게가 그의 생명을 파괴하였을 때에 그의 인품이 어떠했는지 정도는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남북 전쟁시대에 미국을 이끌고 보호하는 일에 큰 부분을 담당한 사람들의 인격을 형성하는 데에 미친 영향력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1885년 10월 7일, 멘토 그래함의 사망기사가 일간지 ‘Blunt Advocate’의 맨 앞면에 실렸습니다. 기자는 그래함을 링컨 대통령의 인격 형성에 영향을 미친 인물로 묘사하였습니다. 그래함은 링컨대통령의 멘토였습니다. 링컨은 대통령으로 취임하는 날, 그래함을 연단 위의 자기 옆에 앉게 할 만큼, 자신에게 사랑, 용기 그리고 지식을 전해 준 멘토로 존중하였습니다. 그래함은 젊은 시절 학업을 포기하려는 링컨을 설득하여 문법을 가르쳤습니다. 이는 링컨이 행한 케티스버그 연설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그래함은 또한 단호하게 술과 노예제도를 반대하였는데, 이러한 그래함의 노예해방사상은 링컨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에선 승객들이 두 줄 서기를 하는 것이 맞습니다. 에스컬레이터 왼쪽 보행은 규칙이 아닌 겁니다. 한 줄 서기는 배려가 아니라 에스컬레이터 고장의 원인이 되며, 안전문제를 초래할 수 있어서입니다. 사람들이 에스컬레이터에서 걷거나 뛰는 것은 급한 용무가 있기 때문일 수 있지만, 무엇보다 마음의 여유가 없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욕망에 대한 집착, 주변에서의 신속한 성과 도출에 대한 압박, 남보다 뒤쳐졌다는 불안감, 자신감 부족을 바쁜 몸놀림으로 만회하려는 노력등이 여유를 갖지 못하는 원인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삶의 여유를 찾기 위해선 무엇보다 소명에 대한 자각을 요구합니다. 누구에게나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소명(비록 그것이 소박한 것일지라도)을 이루기 위함이라는 믿음이 附和雷同하지 않고 삶의 여유를 지키는 길이 됩니다. 우리 한국인은 지금까지 ‘빨리 빨리’를 외치며 목적지를 향해 달려갔습니다. 이는 그럴듯한 외형을 낳았지만, 그 속은 알차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마음의 여유를 갖고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 ‘Back to the Basic’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입니다. 단기 성장의 경우, 경제적 미세조정보다 외려 북한 미국과의 외교적 접
#1. “일어서야 해” A씨는 이렇게 다짐하며 바닥에 쓰러져 있는 자신의 몸을 일으키고자 합니다. 그런데 “난 원래 행복해질 권리가 없지. 행복 같은 걸 누릴 자격이 없어. 난 너무 형편없으니까.” 라며 A씨는 신음합니다. 무언가가 중력처럼 그의 몸을 다시 바닥으로 끌어당깁니다. 과거 겪은 트라우마가 A씨의 자존감을 깎아내리고 있는 겁니다. #2. “바보야. 이것도 못해. 넌 이렇게 머리가 안 돌아가니까 맨날 안 되는 거야.” B씨는 자신을 향해 비난을 퍼붓고 있습니다. 작은 과제 하나를 제대로 완성하지 못한 자신에 대한 책망이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는 겁니다. 이렇게 B씨는 자신의 능력을 비하하며 자존감에 상처를 입히고 있습니다. ◆ 낮은 자존감 vs 높은 자존감 앞의 사례들처럼, 자존감의 손상은 ‘(자연적)수치심’을 불러일으킵니다. 의미 있는 탁월성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자신에 대한 부정적 의식이 침투하여 두 사람은 수치심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낮은 자존감은 현실의 모습과 스스로가 그리는 이상적인 모습간의 격차를 넘지 못할 장벽으로 바라보도록 합니다. 그 차이에 집착하고 이를 비난할 뿐입니다. 때문에 자기가치감이 낮은 사람은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윌버, 자전거 가게로 돌아가라” 1903년 세계 최초로 유인 동력 비행에 성공한 미국인 윌버 라이트(형)와 오빌 라이트(동생) 형제(Wilbur and Orville Wright)는 이들의 혁신적 도전을 꺾고자 하는 인물들의 공격으로 이렇게 조롱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형제는 용감하였습니다. 안락의 동굴, 자포자기의 ‘동굴’을, 멍들고 뼈가 부러지면서, 기어 올라갑니다. 마침내 동굴 밖으로 고개를 들고 황홀한 빛과 포옹합니다. ■ 라이트 형제에 대한 비난과 도전 (위키피디아 참고) 지역신문을 운영하던 라이트집안은 대형 신문사의 등장으로 파산 한 후, 자전거 수리, 제작, 판매 가게를 운영하였습니다. 라이트 형제는 자전거 제작에만 안주하지 않고 동력 비행이라는 도전과 혁신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1890년대 초, 형제는 독일의 오토 릴리엔탈(Otto Lilienthal, 1848~1896)이 글라이더로 하늘을 날았다는 소식을 접합니다. 1896년, 릴리엔탈이 글라이더 시험비행 중 돌풍에 의해 추락사한 것을 알고 바람대신 동력으로 하늘을 나는 비행기 연구를 시작합니다. 이처럼 라이트형제는 안락지대인 ‘동굴’에서 탈출하고자 하였습니다. 라이트 형제는 마침내 1
누운 채로 4년 동안 천장에 그림을 그린 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바로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에 창세기에 나오는 9가지 장면에다 예수의 12제자와 400명이 넘는 인물을 그린 미켈란젤로입니다. 혼신을 다한 그의 노력은 엄청난 희생을 가져왔습니다. 37살에 작업이 마무리 되었을 때, 그는 노인처럼 늙어버렸고,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시력이 약화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그의 희생과 헌신은 예술계에 거대한 충격과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갓 칠한 회벽에 수채화로 그린 프레스코 기법은 후대 유럽 화풍의 미래를 바꾸어 놓았다는 평입니다. 이처럼 희생과 헌신은 자기의 욕심을 채우는 대신 공동체의 행복을 추구합니다. 이는 공동체의 성원을 행복으로 이끄는 ‘선한 리더십’이라 불립니다. ◆ 경제공황은 리더의 공황 : 선한 리더십 VS 이기적 리더십 1997년 우리나라가 IMF경제 위기를 맞이했을 때, 사회의 혼란과 경제적 위기에 대한 다양한 원인과 처방이 나왔습니다. 특히 당시 미국의 월스트리트지는 “한국 경제의 위기는 리더십부재에서 비롯되었다. 현재 한국의 리더십은 달러보다 더 고갈되어 있다.”라며 IMF위기에 대한 원인으로 리더십 부재를 꼽았습니다. 리더십은 한 사람이 다른
우리는 종종 변치 않는 사귐, 두터운 사귐을 지란지교(芝蘭之交)라 칭합니다. 지란지교는 공자의 명심보감의 교우(交友)편에 나오는 아래의 말에서 비롯되었습니다. 子曰 與善人居 如入芝蘭之室 久而不聞其香 卽與之化矣 「공자가 말하기를, “선한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은 (향기로운) 지초(芝草)와 난초(蘭草)가 있는 방안에 들어간 것과 같아서 오래되면 그 냄새를 맡지 못하니, 이는 곧 그 향기와 더불어 동화(同化)된 것이고”」 지란지교는 위의 언급처럼 지초(芝草)와 난초같이 향기로운 사귐이라는 뜻으로, 지초와 난초처럼 맑고 깨끗하며 두터운 벗의 사귐을 말합니다. ◆지란지교란 어떤 교제? 그렇다면 지란지교란 어떤 교제를 말하는 것일까요? 유안진님의 시<지란지교를 꿈꾸며>는 지초와 난초의 향기를 풍기는 친구는 어떠한 친구인지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시 전문: http://www.ondolnews.com/news/article.html?no=1103) 먼저 친밀감을 주는 친구입니다. 김치 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보지 않을 친구, 남의 얘기를 서로 주고받고 나서도 말이 날까 걱정되지 않는 친구, 나의 변덕과 괜한 흥분에도 적절히 맞장구 쳐주는 친구, 부드럽고 세련된 표
우리는 혼자서도 잘 할 수 있다고 말하곤 합니다. 하지만 누군가와 함께라면 우리는 특별한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전통적인 ‘경제적인 인간’을 ‘상호적인 인간’으로 대체할 때 가능하다는 지적입니다. ◆호모 에코노미쿠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꿈이 현실로 나타나기 위해선 타인과의 관계를 맺는 소통능력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말은 수단으로서의 관계를 강조하는 뜻으로도 해석됩니다. 경제적 인간(호모 에코노미쿠스)이 자기 이익을 얻기 위해 관계와 소통에 의존한다는 것이지요. 호모 에코노미쿠스는 사실 건조한 고독 속에 갇혀 있습니다. 그는 타인과 교류 하고 계약에 서명하지만, 이러한 관계는 有償性을 전제로 합니다. 등가교환이 이루어지지 않는 관계는 성립되기 힘들다는 겁니다. 등가교환을 관계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 경제적 인간에게 행복은 소비와 사회적 비교의 함수가 됩니다. 이들은 소득과 소비가 증가하면 주관적 만족도 따라 올라가기 마련이라고 주장입니다. 또한 이들의 행복은 주변의 행복 수준에 의해 좌우되기도 합니다. 자신의 소득이 높아져도 이웃과 친구의 소득이 더 늘어난다면 자신은 불행하다고 여깁니
“어쩜 이렇게 우리 아가는 예쁠까?” 우리 아기는 천사 같다며 엄마는 아기의 볼에 입을 맞춥니다. “우리 아가, 정말 잘했어요.” 엄마는 한 발 한 발 뒤뚱거리며 걷는 아기에게 힘을 북돋아 줍니다. “우리 아가, 잘 커라” 엄마는 다정한 손길로 아기를 안고 젖을 먹입니다. 이렇게 아기는 엄마의 따뜻함을 느끼며 평화롭게 성장해 갑니다. 아기와 엄마와의 공감적 관계를 통해 아기의 자기는 발달합니다. 엄마가 아기의 욕구를 채워주는 에너지원으로 기여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아기에 대한 엄마의 공감적 돌봄이 없어 아기와 엄마와의 관계가 사랑스럽게 연결되지 못한다면, 아기는 욕구를 충족시킬 길이 없습니다. 이러한 자기 결함을 지닌 아기가 성인으로 성장하게 되면, 그는 채워지지 못한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대상을 찾아 지속적으로 방황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에 접하는 중독, 성 도착등은 부모 혹은 양육자의 공감적 돌봄의 결여에서 비롯된다는 분석은 설득력이 있습니다. 이러한 ‘자기’(self)와 ‘자기대상’(selfobject)과의 관계를 통해 ‘자기 심리’를 분석한 학자는 오스트리아 출신 정신분석학자인 하인즈 코헛(Heinz Kohut)입니다. ◆자기와 자기대상 코헛
권력의 나르시시스트들은 유혹자들입니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친절하고 상냥한 척 하지만, 속으로 사람들을 자신들의 발 아래 두고자 합니다. 권력의 나르시시스트들은 착취자입니다. 이들은 사람들을 교묘히 이용하며 그들의 욕망을 추구합니다. 소모품으로 사용된 사람들의 행복을 밟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때문에 온화하고 지혜로워 보이는 가면 밑에 감추어 있는 이들의 마음은 실상 얼음처럼 차갑습니다. 꿈 하나로 견뎌 나가는 작은 사람들은 더 이상 순진한 어린아이로 머물 수 없습니다. 언제까지 권력의 나르시시스트들의 욕망의 도구로 전락한 채, 아첨하고 저자세로 살 수 없습니다. 그들이 파놓은 권력의 미사여구들을 간파하고 그들이 놓아 둔 망상의 덫에 걸려들지 않는 것은 이런 자각에서 출발합니다. 왜곡된 권력의 나르시시즘들이 활개치고 다니는 세상은 이제 바뀌어야 합니다. 힘없는 이들은 이용당하고 착취당하는 도구가 아니라 존엄한 영혼을 지닌 존재라는 개념이 널리 통용되는 세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는 지금까지 권력 밑에서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한 이들이 억눌린 수치심을 떨치고 일어설 때 가능합니다. ‘그래봤자 소용없어. 넌 무능한 자야.’라고 나르시시스트들이 우리들을
우리는 꿈꾸며 살기위해 태어났다고 합니다. 꿈을 꾸며 살거나 꿈과 가까이 살기를 원합니다. 꿈꾸기의 본질은 변화, change에 있습니다. 현재의 상태인 존재와 목표인 당위간의 갭을 좁히는 변화의 과정이 꿈을 이루는 여정이 됩니다. 그렇다면 변화는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변화의 요소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미국의 하이포인트 대학의 총장이며 경영 컨설턴트인 니도 쿠베인(Nido Qubein)은 그의 저서 <석세스 로드>에서 여섯 가지의 변화 요소, 즉 c, h, a, n, g, e를 제시합니다. ① c는 creativity를 일컫습니다. 변화의 첫 번째 요소는 창의성(creativity)입니다. 불을 때는데 석탄을 필요로 하듯이 창의력을 발휘하기 위해 지식이 필요합니다. 지식은 많이 읽고 많이 볼 때 쌓여 갑니다. 그러므로 도서관, 영화관등은 창의성의 보고라 할 수 있습니다. ② h는 healthy habits를 말합니다. 변화에 잘 대처하려면 건강한 몸을 필요로 합니다. 몸이 건강하면 감성과 지성이 더욱 활발하고 예민해지기 때문입니다. 건강한 몸을 이루기 위한 필수요소로, 균형 잡힌 식습관, 규칙적인 운동, 일과 휴식의 균형, 해로운 쾌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