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6 (화)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나눔

[칼럼]필리핀이여 깨어나라! 비농안안섬이여 일어서라! -- <더멋진세상> 비농안안섬 입양,후원

필리핀 태풍 피해지역 긴급구호 소식
 태풍 ‘하이옌’이 남긴 상처와 희망

필리핀 중부지역(Visayas)의 레이테섬, 세부섬, 네그로섬, 파나이섬 등을 차례로 할퀴고 지나간 슈퍼태풍 하이옌(욜란다). 순간 최대 풍속이 시속 379km를 기록한 하이옌은 강력한 바람과 해일로 온 마을을 순식간에 초토화 시켰다. 무너진 건물 잔해 속에서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절규하는 필리핀 주민들의 눈물은 멀리서 바라보는 지구촌 사람들의 마음도 촉촉이 적셨다.

태풍 피해로 아파하는 필리핀 주민들을 돕기 위해 국제개발 NGO <더멋진세상>은 지난 12월 4일 의료팀과 자원봉사자로 구성된 23명의 긴급구호팀을 파나이(Panay) 섬으로 파견했다. 일로일로지역을 기점으로 열흘간 진행된 구호활동은 4개 마을에서 1,300여명을 진찰했고, 12개 마을의 2,000명에게 비상식량과 생필품 등이 담긴 구호품 세트를 전달했다.

계속된 중부지방의 자연재해

필리핀 중부 지역은 지난 10월 15일 중부 보홀섬을 중심으로 리히터 규모 7.2의 강진이 발행하여 많은 가옥이 파괴되고 인명피해도 발생했었다. 하지만 지진으로 놀라고 아픈 마음을 채 수습하기도 전, 또다시 찾아온 초강력 태풍의 재앙으로 필리핀 중부지역이 깊은 시름에 빠졌다. 

강력한 바람과 해일로 온 마을이 쑥대밭이 되고, 소중한 가족을 잃었다. 해일이 발행한 해안 지역은 마을이 침수되어 통째로 쓸려나갔고, 산간 마을은 주 소득원인 바나나와 망고 나무 등 과실수 들이 대부분 쓰러져서 앞으로 최소 6개월에서 1년 정도는 아무런 수확을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학교 지붕은 뻥 뚫렸고, 체육관 건물의 철골구조는 엿가락처럼 휘어져 바닥에 내팽개쳐져 있다.

태풍 피해 현장을 이곳저곳 둘러보니 마음이 착잡했다.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할지 막막하게 느껴지고, 우리의 한정된 힘으로 이 많은 피해 주민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고민이 되었다. 태풍 발생 3주째가 되는 시점이었지만 아직도 피해 가옥들은 즐비했고, 강력한 바람 앞에 산의 나무들도 초록을 잃고 앙상한 가지만 남았다. 

폐허가 된 해변 마을 주민들은 생계수단인 배가 파손되어 아무런 대책도 없이 외부 구호단체들의 도움으로 하루를 연명하고 있었다. 그나마 구호의 손길이 미치는 지역은 다행이었다. 섬마을은 배를 타고 가야하는 접근성의 어려움으로 인해 여전히 소외되고 있었다.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지만 손길이 미치지 못한 지역의 피해주민들에게 최대한 가까이 찾아가서 사랑을 전해야 할 필요성이 느껴졌다.

구호품을 받기 위해 몰려드는 주민들

12월 5일 아침 6시부터 시작된 긴급구호팀의 봉사활동은 7시에 숙소를 나서면서 첫 발을 떼었다. 구호활동 첫날은 차량에 구호품 운반을 알리는 현수막도 설치하고, 필요한 약품 등 여러 가지를 준비해서 가야했기에 바빴다. 특히 구호품을 싣고 가야하는데, 그 부피가 크고 개수도 230개 이므로 한 트럭 가득히 실어야 했다. 더운 날씨에 구호품을 싣는 팀원들은 아침부터 땀으로 목욕을 해야 했다. 

오전 10시 30분 쯤 첫 목적지인 사라(Sara) 인근 아푸사가(Apusaga) 산간마을에 도착했는데, 도로가 아직 정비가 덜 되고, 태풍으로 넘어진 전신주와 전기선이 그대로 있어서 차량이 마을로 접근할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모든 팀원들은 마을 주민들의 오토바이를 타거나 20여분을 걸어서 가야했다. 시작부터 도로 사정 때문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주민들의 적극적인 협조와 참여로 모든 짐을 구호품 전달 장소로 옮기고 의료봉사를 먼저 시작했다.

의료활동 장소에는 벌써 100여명의 주민들이 모여 있었다. 약품을 꺼내기, 발전기의 시동을 걸어 전기 공급하기, 주민들을 번호 순서대로 접수하기 등 차례대로 해야 할 일을 진행했다. 자원봉사 경험이 많은 의료팀원들이라 일이 수월했고, 특히 현지인들과 통역자들이 열심히 섬겨주어 질서 있게 진행될 수 있었다. 외과와 산부인과의 진찰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자 주민들이 계속 진료소로 몰려왔다. 



오전 11시 15분쯤 구호품을 실은 트럭이 도착해서 12시부터 가구별로 이름을 체크하며 나누어 주었다. 현지 동장이 작성한 주민들의 리스트를 체크하면 한 가정씩 구호품을 전해주는 방식으로 천천히 차분하게 진행하였다. 주민들은 정부가 주는 2kg 단위의 쌀만 받다가 묵직한 구호품 세트를 받아들자 환한 미소로 “살라맛”(고맙습니다)을 외쳤다.

물품 분배를 마친 오후에는 구호팀원들이 마을의 진입도로를 정비했다. 마을의 동장도 한국에서 온 구호팀들을 보고서야 부리나케 사람들을 동원해서 도로의 폐인 곳에 흙을 뿌리고, 넘어진 전신주도 바로 세워서 차량의 진입이 수월하도록 도왔다. 마을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서 구호팀원들도 더 힘을 낼 수 있었다.

<더멋진세상>이 품은 더 멋진 아일랜드



<더멋진세상> 본부는 구호활동 지역 중에서 우리의 힘을 집중해서 장기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지역을 선정하기 위해 계속해서 답사를 실시했다. 먼저 피해가 컸던 해변마을 두 곳을 둘러봤지만 우리가 감당하기에 규모가 너무 컸고, 이미 다른 국제 구호단체들이 참여하고 있어서 어려움이 있었다. 

결국 아후이(Ajuy) 군청을 찾아가서 도움을 청해서 인근 섬마을 하나를 추천 받았다. 비눙안안(Binugnan-an)이란 이름의 조그마한 섬으로, 망오로꼬로(Mangorocoro)에서 15분 정도 배를 타고 가야 했다. 그곳에는 50가구와 300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었고, 태풍으로 인해 콘크리트 건물 1채를 제외한 나머지 49채가 파도와 바람에 무너지고 마을은 온통 쓰레기 더미로 뒤덮여 있었다. 커다란 나무들은 마을 여기저기에 쓰러져 널브러져 있지만 너무 크기 때문에 치우지도 못하고 방치되어 있었다. 다행인 것은 어업을 생계로 삼고 사는 이 마을에 배 한 척을 제외하고 모두가 미리 피해서 파손되지 않아 계속해서 어업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곳에도 학교가 있어서 유치원과 초등 2학년까지 수업을 진행했다. 학교 건물은 나무로 기둥을 세워 지붕을 덮고 허리 높이로 벽을 둘러 만든 교실 세 칸이 전부다. 흙바닥 위에 의자 몇 개를 들여 놓고 조그만 칠판을 걸어 놓은 게 교실이었다. 전기는 발전기를 사용하고, 물은 우물을 파서 목욕이나 기타 빨래에 사용하고 식수는 생수를 구입해서 사용하고 있었다. 교회는 없고 조그마한 성당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번 태풍이 무너져 버렸다.

리서치를 마친 후 <더멋진세상>은 이 섬을 입양하여 지속적인 관리를 하기로 했다. 먼저 주택을 수리하기 위해 마을 주택의 리스트를 만들고 각 가정의 피해 상황을 기록하도록 했다. 또한 마을의 재건을 이끌어갈 주민들의 자치위원회 구성을 위해 5명을 선발하도록 권고했다.

지속적인 지원으로 아름다운 섬을 회복

비농안안섬을 입양한 후 지난 12월 8일, 아침 일찍 구호품 50여 세트와 약품 가방을 들고 섬으로 들어간 우리들은 먼저 학교 교실을 찾아가 모임을 갖고 먼저 의료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주민들은 처음 의사 앞에서 진찰을 받아보는 사람들이 많았고, 호기심어린 눈빛으로 찾아와 약을 받아들고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 섬은 앞으로 <더멋진세상>에서 지원한 2,000만원으로 주택복구 사업을 진행하고, 2단계 사업으로 학교 건물을 비전센터로 신축해서 학교로 사용할 계획을 세웠다. 또한 계속해서 사업이 계획대로 잘 진행된다면 우물공사와 정화조, 하수처리시설 등 위생설비의 설치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쓰레기로 뒤덮이고 무너진 가옥과 나무들로 그 아름다움이 가려진 비농안안, 이 섬이 이제 더멋진세상과 이 섬을 사랑과 정성으로 후원하는 많은 후원자들의 마음과 물질이 모아져서 더 멋진 섬으로 거듭날 것이다. 에메랄드 빛의 바닷물과 멀리 보이는 섬과 하늘의 구름, 이 모든 아름다운 자연이 제 모습을 되찾을 날이 속히 올 것을 기대한다.

슬픔과 아픔 속에서도 현실의 어려움이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으로 알고 순응하며 살아가는 필리핀 사람들. 16세기 후반 스페인의 식민지배와 함께 들어온 가톨릭 신앙이 기존의 정령숭배 신앙과 뒤섞여서 필리핀 사람들의 의식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숙명론적 인생관으로 이들의 생각을 붙잡고 있었다. 태풍 피해로 인해 당장 떡이 필요해 보였지만, 그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사슬을 끊는 일이 더 중요함을 깨닫게 되었다.

길거리에서 태풍피해주민 돕기 기금마련을 위한 티셔츠가 등장했는데, 그 문구가 맘에 들었다. 

‘뱅온 비사야스’(Bangon Visayas! 필리핀 중부여 일어나라)

구호활동을 마치고 돌아오며 이제 새로운 필리핀의 부흥을 꿈꿔본다. 아름다운 자연을 갖고 있는 복 받은 나라이면서도 그 선물을 활용하지 못하고 주민들을 지속적인 가난과 어려움에 처하게 하는 이곳의 어두운 기운이 사라지고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그 날을 기대한다. 



필리핀이여 깨어나라! 
Bangon Pilipinas! (Rise up Philippines)
 

<비농안안(Binongan-an)>
바랑가이 이름: 빵딸란(Pantalan)
Purok 이름: Binongan-an(비농안안) 섬
바랑가이 카운슬러: 에롤(Errol)
주택 피해: 50가구 중 49채 파손
선박 피해: 1척 파손. 나머지는 상태 좋음.
인구: 약 300명
아이: 약 100명
학교: 유치원 18명, 초등1년 15명, 초등2년 16명
지원: 3,000만원